이본느 알란 부부
전화 벨소리에 깨 아래층으로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으나 신호는
리빙 룸에 도착하기도 전에 끊어진다. 올라가 침대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다. 16시간 동안을 잤다. 몇 년간의 피로가
몰려들었던 것 같았다. 다시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수화기를 집는다.
이본느의 전화일 것이라고 직감했으나 낯 선 여자의 음성이었다.
상대는 이본느의 친구인 ‘프란세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차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갖다 쓰라고 한다. 다시 그녀는 오후 2시경에 지역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자청을 해와 기쁜 마음으로 승낙한다. 그녀는 웨
일즈 사람인 웰시(welsh)가 아니라 런던에서 태어난 토박이 잉글리시
(english)다. 이본느는 전형적인 웰시이고 알란은 본토박이 잉글리시다.
이들의 웰시와 잉글리시 부부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그들은 20년 이상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본느는 종종
잉글리시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푸념처럼 말하곤 했다.
이본느는 떠날 때 마을의 의사인 ‘닥터 파울’과 ‘프란세스’를 가면
만나보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아무튼 만나지도 않은 외래 손님에게
필요하면 언제든지 차를 갖다 쓰라는 그녀의 호의는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주방으로 가 아침을 챙기는 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보니 낯 선 남자가 서있다. 그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에게 자신이 ‘닥퍼 파울’이라고 소개하며 이본느에게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인사를 건넨다. 점심을 자기 네 집에서 함께 하자고
말하며 길 가 건너편에 있는 자기네 집을 손짓 한다.
얼겁 결에 초대를 승낙하고 돌아서며 나는 좀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본느에게 낯 선 동양인이 자기 코티지에 방문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차를 갖다 쓰라는 후한 제의나 전혀 만나지 않은
사람을 초면에 점심 식사에 초대를 하는 것은 잉글랜드에선 전혀
볼 수 없는 인심이다.
친절은 언제나 단단하게 여민 마음을 풀어준다. 긴장하고 독하게 먹고
있는 마음을 녹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갖게 한다. 그동안 쌓인
삶의 앙금과 여독이 모두 씻겨나간 듯 마음이 상쾌하다.
석탄 스토브에 다시 불을 집힌다. 그녀가 알려준 방법대로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고 석탄을 두 삽 퍼서 넣은 후 난로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나는 물이 데워지길 기다리며 차를 끓인다. 이제 내 아침은 만들 필요는
없다.
나는 이본느 의자의 옆 벽, 알란의 의자의 맞은편에 놓인 손님용
의자에 찻잔을 들고 앉는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등받이는 90도 각도로
벽에 붙어있고 지나치게 폭이 넓어 그 등받이에 기대기가 쉽지 않아
불편했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불편해도 그들의 자리에는
앉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이 앞에 있어도 나는 이렇게 앉아 있을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을 안 것은 5년 전이었지만 그 서로 불편하게 보이는
관계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아마도 결혼하고 바로 그런 관계로 접어 든
것이 아닌가, 나는 짐작했다. 물론 런던 LSE 출신에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알란은 적어도 외부적으로 최고의 지성인이 틀림없고
런던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옥스퍼드에서 학사학위를 추가한 이본느도
그렇다. 당연 두 사람은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커플이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마치 시선이 90 각도로 놓여 있는 의자의 위치와 같이 두 사람은
언제나 90도 정도 사이를 벌리고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본느의
의자의 위치와 같이 정면에 TV 옆에 즐겨듣는 CD플레이어가 있고
그 옆에 알란의 의자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즉 그녀는 TV를 보다
흘낏 곁눈질로 언제나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볼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항상 살필 수 있다. 그리고 90도 각도로 놓여 있기 때문에
불편하게 시선을 마주칠 필요도 없다.
알란은 저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아니면 책을 들고
자기 시선을 관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 가끔 그들은 시사문제나
성경 구절로 논쟁을 벌인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마치 십대의 아이
들처럼 설전을 벌이는데 대개는 알란의 신경질적인 흥분한 목소리로
끝나고 만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게 논쟁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곤 했다.
나는 누가 옳은지 관심이 없다. 단지 그들의 관계와 거리에 신경을
쓸 뿐이다. 그 옆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설전을 벌일
때 나는 주위에 있는 그들의 오랜 친구들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
때마다 나는 당혹해 하곤 했다. 적어도 10년 이상 수십 년을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 이들은 알란과 이본느의 설전에 길들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불편한 시선으로 당황해
하고 때론 얼굴을 붉히기도 해 내 짐작을 여지없이 깨곤 했다.
학문과 높은 지식에 대해서 회의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들 관계를
관찰하고 엿본 다음부터다. 지식과 학문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 것이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 때부터 이본느의 꿈을 망가뜨린
것은 바로 그 왕성한 지식과
지적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 지적인 갈구를 했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학문을 섭렵했다. 그리고 그 지식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자신의 방만한 지적인 호기심을 노출시키고 싶어 하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다.
이본느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움직이기를 바랐고 실제로 주변
과는 상관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활을 하고 항상 남편과 대등한
위치에 놓여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그녀의 갈망을 주
위에 노출시켰다. 아마도 처음에 두 사람은 마주보며 동일한 각도로
마주 보거나 아니면 나란히 옆에 앉아 시선을 서로 나누었을 것
임은 의심할 여지없다. 낯 선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만약 지식이 삶을 기쁘게 하지 않거나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고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한 잔의 차를 비우고
다시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다.
초대 받은 시간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이본느의 인형의 집의 문을 연다. 그리고 어린 소녀가 인형의 집에서
꿈꾸었을 일상을 상상한다. 구석구석을 돌아보아도 이본느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희망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인형의 집에서 보이는 6개의 나누어진 방 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단 한 권의 책도 보이지 않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책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도 평범한 여자의 꿈을 꾸고 누군가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를 꿈꾸었고 적어도 그것은 지금 이본느가 살고 있는
삶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삶을 불행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더욱
주위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인형의 집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관계를 엿보러 일어섰다.
웨일즈의 산골마을의 의사인 닥터 파울 부부의 집으로 나는 출발한다.
...................................................................................................................
<은시의 글/ 필자는 영국의 한 여자의 삶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지금 수년
째 밀착 취재하며 영상으로 기록하며 주변의 인물을 또 다른 관찰하고
있습니다. >
'산다는 것이 예술이다, > 인형의 집에 숨겨진 여자의 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일즈인과 잉글리시는 과연 다른가? (0) | 2009.10.06 |
---|---|
여자의 <체념>과 <포기>는 정말로 가정의 행복의 도구인가? (0) | 2009.09.10 |
인형의 집에 버려진 한 백인 여자의 꿈 (0) | 2009.07.23 |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남자의 삶 (0) | 2009.07.03 |
인형 언저리에 서성거리고 있는 중년 사내 (0) | 2009.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