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의 낯 선이에게 점심을 초대받고 나는 그의 집으로 출발한다.
길 가의 지나가는 길손도 불러 한 그릇 따듯한 밥을 나누어주던 오래
전의 한국의 시골들에서나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가? 문득 웨일즈인
은 영국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사실 웨일즈인은잉글랜드와 언어도 다를 뿐더러 문화도 물론 다르고
물론 DNA도 다를
것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서로 대립적 관계로 담을
쌓고 살다 수 백 년 전에 잉글랜드에
의해 합병이 되고 대영제국에 편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웨일즈인 이본느는 자주 토박이 잉글리시인 남편 알란 박사에게 대해서
'이해하지
못할 잉글리시'란 푸념을 늘어놓아 그들에게 정말 어떤 지역적인
특색이 있는가, 나도 자못 궁금해 했었다.
닥터 파울의 집으로 출발하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한번도 만나보지도 않은 낯 선 동양인을 식사에 초대할 줄 아는 그들은
여느 사람들과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 미리 준비한 작은 선물을 챙겨 가지고 출발했다.
닥터 파울의 집은 길가의 세미 디테치드 하우스로 나란히 두 가옥이
붙은 전형적인 영국의 평범한 집이었다. 50년 이상을 진료한 의사의 집
같지 않게 주위의 평범한 가옥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깔끔하게
손질이 된 흔적이 곳곳에 보여 안 주인의 성격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본느의 집과는 달리 탄광촌이 번성할 때
지어진 집 같았다. 한 쪽에는 그가
진료소로 쓰던 조그만 건물이 붙어 있다.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보는 보건소와
같은 곳인데 3분 1 정도도 되지 않은 작은 건물이었다.
나는 잘 가꾸어진 꽃들을 돌아보며 현관문 벨을 누른다. 닥터 파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문을 열어주었고 좁은 복도를 통과해 식당과
붙어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는 다이닝 룸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부인인 미리울이 커다란 미소를 반겨준다.
"편하게 잤어요?"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묻는다.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가 깔린 질문에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
"네 오랜 만에 아기처럼 12시간을 잤습니다."
내 말에 그들은 깔깔 웃고 그 집에 샤워가 불편 할테니 언제든지 와서
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적지 않게 다시 놀란다. 보통의 잉글리시
들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절대로 목욕탕을 쓰게 하지
않는다. 방문한 친구 집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반드시 '화장실을 좀 이용해도 되겠느냐는
식의
양해를 구하고 사용한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닥터 파울은 마치 오랜 지기라도 만난 듯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 누구인가 한 사람씩 설명해 준다. 그에게는 세 자녀가 있는데
큰 아들은 웨일즈의 수도인 카디프 시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둘째 아들은 인근
에 살고 있는데 자선단체 일을 보고 있다고 사진 속의 한 인물을 지적했
다. 셋째는 딸인데 인근에 살고 있다고 설명하고 다음에는 손녀와 손자
들에게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세세하게 설명하는 덕분에 그의 집에 식구들의 수와 직업까지 알아내는데
는 10분도 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전혀 경계를 하지 않고 편하게 해주는
덕분으로 나도 낯 선 분위기를 떨구어내고 그들 분위기 속으로 동화되었다.
닥터 파울과 그의 부인 미리울,
일반적으로 영국인이라하면 브리티시(British)를 지칭하고 네 나라의 네 인종을
말한다. 네 종족은 좁은의미의 영국인인 잉글리시(english) 웨일즈인(welsh),
스코틀랜드인(Scottish), 북 아일랜드인(Irish)인을 말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선
영국의 대부분의 지역과 인구를 점유하고 있는 잉글랜드(England)인을 의미한다.
영국인들은 이 혼동을 구분하기 위해서 절대로 잉글리시란 말을 전체 국민에게
적용하지 않고 반드시 전체를 사용할 때는 브리티시(British)란 단어를 사용한다.
자기네들은 서로 다르고 이 다르다는 것을 서로 강조하며 강한 긍지를 갖고 있다.
닥터 파울과 미리울 부인은 웰시가 잉글리시하고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내게
보여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은시의 글/ h.h.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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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기 화일<프란세스의 이야기>의 속에 있는 다른 글과
관련을 맺고 계속 이어지는 글이고
본 화일의 속의 글 <9'0도 각도로 사는 부부의 이야기'>의 다음 편입니다.
또 계속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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