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을 여행, 콘월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1

열린문화학교 2011. 10. 3. 19:10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이번 출발은 사실 아무런 목적도 두지 않은 여행이었다. 자신을 살피고 이 혼란기에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론가 떠나야할 것 같다는 결심은, 나의 삶을 

잠시 조각내고 틈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세인트 아이비스를 목적지로 정한 까닭은 시간을 잃어버려 화석같이 굳어버린 그곳에 어떤 답 

혹은 알지못할 내자신과 미술사의 미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도 있었다.  그곳은  

스스로의 시간을 잃어버려 실패한 곳이다.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현실 감각을 상실했다는 의미로 현재의 시간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직시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낙오된다. 그것은 사람도 사회 단체도 국가도 마찬가지

다.  세인트 아이비스는 바로 그 시간을 잃어버린 곳이다. 


1930년대 영국이 세계 미술사의 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는 세번째의 기회를 놓쳐버린 비극적인 

미술사의 무대다.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고 테이트 미술관을 바닷가에 짓고 역사가들과 정부, 

문화기획자들은 야심적인 전략을  세워 그곳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작업을 수 십년 째 해오고 있다. 과연 세인트 아이비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혹시 이미 죽은 화초에 거름을 마련해주고 물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을 평소에 늘 던지며 의심스럽게 나는 영국의 현대 미술을 살펴 보았다.  문화사를 인식하고

 그 문화사 속에 자신의 작업을 껴넣어야만 낙오가 되지 않는다는 당위성보다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국 현대 미술과 내 삶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9시간의 긴 여행을 하면서 질문은 꼬리를 꼬리를 

물고 일어섰다.  들고간 황석영씨의 소설 "낯익은 세상"을 다 읽을 즈음에 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콘월로 들어섰다. 음산한 날씨에 비는 마치 오월의 바람에 날리는 배꽃처럼 차창에 밖히고,  

산고 들은 물안개에 쌓여 신비롭게 일어서고 있다.


아침에 런던에서 출발하여 콘월의 펜잔스에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야릇한 흥분과 기대감으로 

무겁게 지고 왔던 화두는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