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 인간의 정형과 원형의 길을 제시해 주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는 자전적인 경험에 적당히 살을 붙인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한 청년의 성장기이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서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긴 삶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사실적 묘사의 이야기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국의 소년 필립 케어리는 소설의 저자와 똑 같이 중상층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목사인 숙부의 집에 보내진다.
주인공인 필립은 생각이 많은 소아마비 앓은 소년으로 기숙 공립학교에 입학해
다니다 그만두고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가 청강생으로 가 수학과 언어를 공부
한다. 이 같은 과정은 허구적인 인물 필립을 창작해 <인간의 굴레>로 풀어 놓은
서머싯 몸의 실제 경험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에서 돌아와 다시 숙부의 권고로 회계사의 조수로 들어가 견습사원
생활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다시 파리로 가 미술을 공부한다.
그러나 미술로 크게 성장할 수 없는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도 여느 청년과 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굴레가 소중한 것은 제목처럼 '보통 사람이 마치 굴레처럼
겪어야 할 인간의 굴레' 속에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청년기에 모두 이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나의 삶은 내가 생각한대로 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진지한 질문을 <인간의 굴레>에선 엿보기로 간접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필립의 진지한 방황의 무대가 19세기 유럽의 전역을 무대로 하여
독일과 파리 그리고 잉글랜드 지역과 런던으로 펼쳐지며 당시의 지성인과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직접 간접으로 대사 속에 등장하여 보너스로 유럽의
근대 지성사의 현장을 엿 볼 수도 있다.
이런 것보다 나에게 더욱 소중했던 것은 이 책을 읽었을 17살의 나에게 삶의
정형(定形)을 제시해 주고 삶의 원형(原形)을 가르쳐 주었다는 점이다.
17살 시절, 삶의 개성화를 추구하며 정형화된 방식을 무조건 거부하던 저항기에
서머싯 몸이 필립으로 제시해준 작은 질문....세상의 병구멍은 모두 동그랗고 이
구멍에 맞추기 위해선 무조건 모난 각을 깍아 동그랗게 굴러야한다는 의미로
결국은 나도 어디엔가 구멍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삶의 원형은 결국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보다는 무심의 마음에서 어느
무늬인지도 모르고 짜내려간 페르시아 융단으로 제시된 의미를 낚아내고 황량한
마음을 훑어내린 경험이 있다.
즉 정형은 모두 같은 모양의 동그란 병 구멍의 병마개로 원형은 쓸쓸이 죽어간 한 시인의
낡은 페르시아 융단의 무늬로써 비유되고 있다.
<은시의 독서록, 인간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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