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분열과 그 표현
문득 길을 가다 내가 본 나는 한 덩어리의 고깃덩어리였다.
내 삶은 한 없이 건조하고 내 몸을 유지하던 내 정신은
내 몸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다.
그리고 나는 나를 먹기 위해 사육 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로마신화의 새턴)가 자기 자식을 꾸역꾸역 잡아먹고
있는 고야의 그림이 떠올랐다.
신화는 한 인간이 가진 내부 정신 속에 있는 다양한 인간의 성격을 개별적으로 인격화
것이니 결국 크로노스가 잡아 먹고 있는 다섯명의 자식은 ...분화되지 못한 자신의 내부의
의식의 갈래일 뿐이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심정도 복합된 여러가지 마음이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인간은 인간을 먹는다. 자신을 스스로 먹어치우며 스스로를 말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방기와 욕망 혹은 관심,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말로
먹어치워 말살하는 경우도 있다.
고야가 74살이 되어 이 그림을 그린 사실에 우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그림은 오직 자신을
위한 그림으로 자신의 집 다이닝 룸, 먹고 마시는 집 벽 한 쪽에 그려졌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에게 이런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은 물론 자신의 어린 자식 6명을 차례 차례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없는 진한 슬픔을 경험한 동기도 있지만, 어느 날 자신을 삼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다.
정신이 제거된 인간은 한 덩어리의 고깃 덩어리일 뿐이다. 지금 내 정신이 제거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한덩어리의 비계덩어리 일 뿐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고깃덩어리로 자신과 한
성직자를 표현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라파엘로에 의해 그려진 교황의 그림을 그는 여러 방법으로 다시 재 표현했는데, 이 그림은 고깃덩어리로 표현된 그림이다. 만약에 성직자에게 종교적 성스러움과 기독교 본 정신이 없다면 이 그림에 표현된
대로 추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그러지고 분열된 모습, 당시 그의 삶을 생각해 보면 왜 그가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런던 뒷골목의 빛이 잘 스미지도 않는 화실에서 그는 단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아 화실은 엉망진창이었고 물감은 여기 저기 엉겨 붙어 있었으며
자신의 그림에도 먼지가 엉겨 더럽게 번져 있었다.
그의 삶도 엉망진창이었다. 동성애와 넉넉하지 않은 삶, 먼 아일랜드 인으로 자만심이 강한
영국인 들 사이에서 예술가로 버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의 그림을 알아
주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없었다.
내 고깃덩어리에 대한 체험은 물론 이들 예술가와는 다를 것이다. 단지 자아에 대한 분열 현상과
내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를 져야하는 가를....오늘 다시 이 예술가들 사색하면서
나는 나에게 묻고 있는 중이다.
<은시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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